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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감상문

엘리트들 2

호무리 2019. 10. 5. 10:08






최근 공개된 스페인 드라마 <엘리트들> 두 번째 시즌을 드디어 다 봤다.

총 8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보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역시나 이전 시즌보다 지루해서가 클 것이다.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나면서 더욱 복잡한 떡밥을 던지는데 질질 끌어 보기 힘들었다. 새로운 전학생들과 기존 학생들과의 관계, 구스만과 사무엘의 대립, 마리나를 죽인 진범을 밝히기 위한 사무엘의 어설픈 수작 등이 정교하다기보다는 어수룩하다고 느껴졌다.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줄기인 사무엘의 실종을 다루기 위해 너무 긴 시간을 들여 설명하려는데다가, 불필요한 재벌막장씬을 넣느라 재미가 없어졌다. 특히 섹스씬 연출은 오글거려서 봐주기가 힘들었다.

시즌 1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커플링인 구스만과 나디아, 안데르와 오마르의 관계는 불타오르지 못하고 계속 지지부진하며 지겹게 느껴진다. 이전에는 나디아가 가진 종교, 신념과 어긋나는 사랑과의 갈등이 첨예하게 다뤄졌다면 이제는 나디아가 확실히 사랑을 택한 모습이 드러나는데, 전과는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 차이가 너무 어색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오죽하면 나디아의 아버지가 정말 잘 구성한 캐릭터라고 생각되었다... 나디아의 아버지는 마치 모델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섬세하게 조각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결국 나디아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외부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일면을 부정해야만 했다.


구스만은 마리나를 잃고 나서 내내 정신을 잃고 날뛰는데, 이전처럼 치기어리고 자존심이 세보인다기보다는 분노의 갈피를 잡지 못해 어쩔 줄을 모르는 듯 했다. 이런 장면을 너무 오래 끌었기 때문에 나디아와의 관계를 조명하지 못한 부분도 크다.


이렇게까지 길게 다루지 않아도 될 새로운 떡밥 덕분에 역시 오마르와 안데르의 관계도 크게 입지가 좁아졌다. 둘은 존재감을 잃고 흘러다니다가 안데르가 진실을 알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죄인도 아닌데 중간에 낀 안데르만 모든 것을 잃어가며 오마르와도 다투게 된다. 오마르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인생을 쌓아가는 반면 안데르는 바람에 휘말려 갈대처럼 흔들리기만 한다. 갑자기 오마르가 록키호러쇼의 분장을 하는 부분에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이상해진다...


안정적인 극의 중심이 되었어야 할 사무엘은 전학생인 레베카와 우정을 쌓게 되는데, 진범을 알아내려고 어설프게 카를라에게 수작을 걸 때부터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극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다. 실종이라는 거대한 떡밥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가 맥이 탁 풀리는 전개만 보여주고 만다.


레베카는 인상적인 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자리잡게 된다. 새로운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쓰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아예 막장력을 강화했다면 모를까 뜬금없이 털털한 순정파 캐릭터가 끼어서 얜 뭔데 싶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귀추가 주목되어야 할 인물들이 몇몇 있다.


또 다른 전학생인 카예티나는 여러가지 의미로 새로운 인물이다. 그동안의 장학생들이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고 크게 섞이려 하지 않았다면, 카예티나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새로이 시작하려는 인물이다. 엄청난 야망을 가진 인물이지만 때로는 뻔뻔해서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다음 시즌에서도 카예티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작가가 알차게 써먹은 캐릭터이다.


카예티나가 루크레시아와 함께 다니면서 루 역시 흥미의 반열에 오를 수 밖에 없었는데, 루의 이복동생인 발레리오가 함께하면서 이 둘이 가장 흥미로운 인물들이 되었다. 루크레시아는 극의 말미까지 가진 건 많아도 되는 것 없이 이리저리 치인다는 느낌이었는데, 진실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복수의 칼날을 들어 내리친다. 배신감에 불타면서도 아주 지친 느낌을 주어 묘했다.

발레리오는 가벼워 보이는데다 어쩌다 보니 친구가 루와 나디아뿐인 약쟁이 인생을 살고 있었다. 발레리오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파괴적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마약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아주 가벼운 자기파괴일 뿐이었지만, 끝에 가서는 금지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부수는 데 망설임을 두지 않는다.


독특한 관계를 구성했던 크리스티안-카를라-폴로는 크리스티안이 첫 화만에 하차하는 수준으로 사라져버린 후 폴로의 불안정함이 계속되었다. 카를라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잃은 폴로는 새로운 지지자를 만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공황장애를 호소하는데, 열렬한 지지자에게 자신의 죄책감을 보상할 방법을 찾고 안정을 찾자마자 순식간에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모두 잊는다. 훌륭한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보인다.

카를라는 귀족적인 오만한 아름다움이 인상적인 학생이었지만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기자 눈에 띄게 변화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어떤 말을 해도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배우 개인 역량의 문제인지 의심하고 있다. 아쉽게도 사무엘과의 관계가 무척 재미가 없어서 더 짜증나기도 했다.




이미 차기 시즌이 내정되어 내년 하반기에 방영될 것으로 예상은 되는데, 부디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하이틴 드라마를 유치한 맛으로 본다지만 재벌들이 흥청망청 노는 장면들이 유명 셀럽의 인스타그램을 어설프게 따라한 듯 했으며 분량을 채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극에 긴장감을 싣는 데에도 실패했고 연출도 촌스러운 느낌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크게 얻지 못했다.

게다가 뭣도 없는 고등학생들이 이렇게까지 범인을 떠다 먹여줬으면 상식적으로 경찰은 응당 잡아야만 할 것이다. 범인을 코앞에 두고도 못잡는 경찰이라면 누가 긴장을 하겠는가. 한 가지 사건을 두 시즌 내내 우려먹기에는 이미 범인이 밝혀져 있으며 난 재벌이니까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도망다니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화만 돋구고 있다.


좋은 퀄리티로 마무리했던 작품들이 억지로 꾸역꾸역 잇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 박수칠 때 떠날수록 멋진 여운을 남기고 좋은 평가만 남을 수 있는데 굳이굳이 먹칠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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